선택적 함구증 |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말을 안 해요

집에서는 종일 수다쟁이인데, 유치원이나 학교에만 가면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물어봐도 고개만 끄덕이거나 가리키기만 할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죠.

처음엔 "우리 애가 좀 수줍어서 그래요"라고 넘겼는데, 몇 달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이 "벙어리"라고 놀리는 걸 목격한 날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이런 증상, 단순한 수줍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오는 아이들

선택적 함구증은 말 그대로 특정 상황에서 '선택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불안 장애예요. 오은영 박사님이 금쪽이 프로그램에서 설명했듯이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오는 것"이거든요.

집에서는 평범하게 대화하는 아이가 학교나 낯선 환경에서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한 마디도 못합니다. 이건 아이가 반항하거나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에요. 불안이 너무 커서 정말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거죠.

실제로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아이들의 약 90%가 사회 불안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 상황에 놓이면 몸이 경직되고, 마치 위험을 감지한 동물처럼 '얼어붙는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우리 아이도 선택적 함구증일까?

보통 3~6세 사이에 처음 나타나는데, 특히 여아에게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유병률은 0.08~0.72%로 100명 중 1명도 안 되는 꽤 드문 증상이에요.


주요 특징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집에서는 활발한데 밖에서만 조용한 경우 가족과는 편하게 대화하지만, 학교나 공공장소에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아요. 심지어 화장실이 급해도 선생님께 말을 못해서 참는 경우도 있죠.

말 대신 몸짓으로 표현 고개 끄덕이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어깨 으쓱하기 등 비언어적 의사소통에만 의존합니다. 아주 급한 상황에서는 속삭이듯 한두 마디 하기도 해요.

1개월 이상 지속 처음 학교나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며칠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한 건 정상이에요. 하지만 한 달이 넘어서도 계속된다면 선택적 함구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왜 우리 아이가 이렇게 됐을까요?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먼저 타고난 기질이 있어요. 원래 예민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이 특정 환경이나 스트레스 상황을 만나면 선택적 함구증이 나타날 수 있죠. 가족력도 영향을 미치는데, 부모나 형제 중에 불안 장애가 있다면 발병 위험이 높아집니다.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어요. 이사를 가거나 전학을 가는 등 큰 변화를 겪었을 때, 혹은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모의 과잉보호나 가족 간의 갈등, 엄마가 지나치게 권위적인 경우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고요.

특히 분리 불안이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말문을 막아버리는 거죠. 어떤 연구에서는 선택적 함구증 아동의 61%가 엄마와 공생적 관계에 있다고 밝혔어요.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10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10세 이전에 50% 정도가 호전되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만성화될 수 있어요. 실제로 평균 발병 나이는 3세 4개월인데, 치료를 시작하는 평균 나이는 7세 7개월이라고 하니 많은 아이들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는 셈이죠.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학업 부진은 물론이고, 또래 관계 형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 불안이나 회피 성향으로 남을 수 있거든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압박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말을 안 해?" "집에서는 잘하면서 왜 밖에서는 못해?" 이런 말은 아이를 더 위축시킬 뿐이에요. 말하도록 강요하거나 보상과 벌을 주는 것도 역효과를 낳습니다.

놀이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 중 하나예요. 놀이를 통해 아이의 불안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도록 돕고, 치료자와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죠.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36회의 놀이치료 후 선택적 함구증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행동치료도 많이 사용됩니다. 처음엔 가장 친숙한 사람(엄마)과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낯선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확대해가는 방식이에요. 이걸 '체계적 둔감화'라고 부르는데, 불안을 조금씩 줄여가는 거죠.

심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주로 SSRI 계열의 항우울제를 사용하는데, 한 연구에서는 플루옥세틴을 9주간 복용한 후 76%의 아이들에게서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고 해요.


집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들

편안한 분위기 만들기 집에서라도 아이가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책 읽기, 이야기 꾸미기 같은 자연스러운 말하기 활동을 격려하되, 절대 강요하지 마세요.

비언어적 소통 인정하기 아이가 고개 끄덕이기나 손짓으로 의사표현을 하면 그것도 충분히 인정해주세요. "아, 그렇구나. 네가 원하는 게 이거구나" 하고 반응해주면 됩니다.

규칙적인 집단활동 참여 미술, 음악, 체육 같은 비언어적 활동부터 시작해보세요. 말을 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서 자신감을 얻으면, 점차 언어적 표현도 늘어날 수 있어요.

도와줄 친구 만들어주기 학교나 유치원에서 아이를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를 한 명 정도 붙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래의 도움이 어른의 도움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인내심

선택적 함구증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몇 개월 만에 좋아지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중요한 건 아이가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거예요.

한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3년 동안 학교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날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서 함께 울었대요. 그 한 마디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기다림이 있었을까요.

부모님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선택적 함구증은 부모의 양육 방식 때문만은 아니에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죠. 지금 중요한 건 아이를 이해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선택적 함구증이 의심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소아정신과나 아동발달센터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아이에게 맞는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마무리하며

선택적 함구증은 아이가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말이 나오지 않는 불안 장애입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압박하지 않으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부모의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해주세요. 언젠가는 꼭 그 닫혔던 입이 열리는 날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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