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면 다 우울증일까?
살다 보면 누구나 우울한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런 순간들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슬픔과 무기력함을 경험하죠. 그런데 이런 감정이 좀 오래 간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일까요?
우울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기분이 우울하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위 '강철멘탈'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들은 우울하거나 슬퍼도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러 나간다든지,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든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면서요. 마치 늪에 빠졌다가도 나뭇가지를 잡고 빠져나올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우울증은 다릅니다
우울증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우울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한 환자분은 이렇게 표현했어요. "끝없이 빨려들어가는 모래늪에 홀로 빠진 것 같다. 붙잡을 것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무한으로 펼쳐진 어둠 속에 있는 기분이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모두 무기력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예전에 즐겼던 일들도 더 이상 즐겁지 않고, 친구를 만나도 기쁘지 않습니다.우울증의 진단 기준, 체크해보세요
정신의학에서는 DSM-5라는 진단 기준을 사용합니다. 다음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거의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 모든 일상 활동에서 흥미나 즐거움이 사라진다. 체중이 급격히 변한다 (한 달에 5% 이상). 불면증이나 과다수면에 시달린다. 정신운동이 초조하거나 지연된다. 거의 매일 피로하고 활력이 없다.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을 느낀다. 사고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반복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이런 증상들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면, 더 이상 혼자 견디려 하지 마세요.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무기력함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우울한 기분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고, 기분전환을 하면 괜찮아집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버겁고, 양치질하는 것도 힘들어집니다. 회사나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죠. 가정주부가 살림을 전혀 못하거나, 학생이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건 정말 치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상태가 계속될 거라는 절망감입니다. "이러한 괴로움이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자살사망자의 약 60%가 우울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혼자 극복하려 하지 마세요
많은 분들이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우울증은 의지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당뇨병 환자가 의지력으로 혈당을 조절할 수 없는 것처럼, 우울증도 치료가 필요한 질병입니다.
실제로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습니다. 생화학적인 원인이 있는 질병이라는 거죠. 그래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춰주면서 증상이 호전됩니다.
다행히 우울증은 치료가 잘 되는 질병입니다. 초기 완쾌율이 70-80%에 이른다고 하니까요. 최근의 항우울제들은 부작용도 거의 없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우울증 환자에게 "힘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어요.
대신 이렇게 해주세요. 그저 곁에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병원에 함께 가주고, 약을 잘 먹도록 도와주세요. 산책이나 가벼운 활동을 제안하되, 거절하더라도 너무 강요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살에 대해 언급한다면 즉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우울한 감정과 우울증의 경계는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2주 이상 지속되는 심각한 증상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정도의 무기력함,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절망감... 이런 것들이 있다면 꼭 전문가를 찾아가세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지만, 감기처럼 그냥 놔두면 낫는 병이 아닙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질병이니,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도움을 청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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